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삶/창작99

세월의 샛길 세월의 지우개는 창문을 지우고 산등성이에 드리워진 부드러운 오후 햇살을 지웁니다 영혼의 날개는 육신을 지운 채 창틀만 남기고 허공 속 추억의 편린을 거둡니다 텅 빈 허공 간지러운 가을 바람결 추억 속 향기 찾아 세월의 샛길을 치장합니다 2021. 9. 14.
생각-마음이 떠난 후에야 “마음이 떠나야 몸이 떠날 수 있습니다.” 몸만 떠난들/ 마음은 머무는 까닭에/ 갖은 상사를 불러와/ 긴 밤을 새까맣게 칠 한 채/ 그리움으로 지샌답니다. 2021. 9. 14.
좋을 땐 그게 좋은 것인 줄 모른다 "좋을 땐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인 줄 몰랐다." "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." 콩팥 하나를 들어냈을 땐 몰랐다. 콩팥이 두 개였던 이유를. 그저 당연한 듯했다, 너무도 자연스러워했다. 이제 하나 남은 외로운 콩팥을 보며 들어낼 때 열었던 뱃가죽의 없어지지 않는 수술 자국을 보며 속삭인다, “나에게도 두 개의 콩팥이 있었을 때가 있었어." 라고. 사랑할 땐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모른다. 이제 그 사랑이 떠나고 그리움이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올 때쯤이면 보고픔에 애타는 마음이 사무쳐 시린 가슴에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면 떨어지면 안 됐을 사랑임을 깨닫는다. 내가 멀쩡한 두 다리로 걸을 땐 몰랐다. 그게 얼마나 소담스럽고 감사한 일인지. 두 다리 중 한 다리, 그중에서 한 마디, 그 마디를 위로 밑으로.. 2021. 9. 14.
생각-금보다 귀한 평범한 일상 병원 갈 일이 없었을 때가 있었습니다. 뛰어서 계룡산에 오르고, 설악산을 오르고, 북한산을 올랐던 때, 이제는 돈 줄 테니 해봐라! 해도 못 합니다. 다리 한쪽이 그럴 형편이 안되기 때문입니다. 그래서 생각합니다. “손에 들고 있을 때는 금인 줄 모른다.”라고요. 친구와 화려하지 않은 곳에서 비싸지 않은 커피 한 잔 나누며 정겨운 대화를 나눴던 때가 언제였던가? 합니다. 코로나 한가운데에서 작은 일상의 행복을 그리워합니다. 그래서 동의합니다, “사라지기 전에는 소중함을 모른다.” 2021. 9. 14.
누가 날 정의해야 하나 오늘 조영제를 맞은 건 CT 검사를 위해서였다 내 주치의께서 처방했다. 의사들은 날 4기 암 환자라고 한다 그럼 난 그저 말기암 앞둔 암 환자일 뿐인가 그게 나의 전부인가 그들이 그렇게 정의하면 그게 내가 되는 걸까 암 환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지 않을까 꿈도 있고 희망도 있고 재밌는 걸 보며 웃기 좋아하고 슬픈 내용 읽으며 울기도 하고 멋을 내고도 싶고 헤어 스타일을 바꾸고도 싶고 이질적인 새 친구도 사귀고 싶고 봉사도 하고 싶고 때론 옛날 귀걸이도 하고 싶고 10년 다 돼가는 차 새 차로 바꾸고도 싶고 어떤 이들은 말한다 아픈 데도 없는 사람이 일도 안 해 그들이 그렇게 말한다 해서 내가 아픈 데가 없는 사람인가 그들이 일도 안 한다고 하면 내가 어떤 일도 안 사람이 되는 걸까 도대체 몇 명이 나를 .. 2021. 9. 14.
어둠과 빛은 함께 춤춥니다 밤이 왔습니다 깜깜합니다 비로소 별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두 손으로 턱을 굅니다 영혼이 은하수 따라 헤엄칩니다 밤이 왔습니다 깜깜합니다 비로소 달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두 손을 모읍니다 소원이 달무리 되어 환해집니다 어둠과 빛은 함께 춤춥니다 죽음과 삶도 함께 춤춥니다 죽음 없이 삶은 빛나지 않습니다 삶은 죽음을 전제로 화려해집니다 2021. 9. 14.
죽었다는 말 대신... 그녀는 장례식장에서 집에 막 도착했다. 일부는 흐르는 물에 띄우고, 일부는 나무 밑에 뿌리고, 일부는 바람에 날렸다. 마당 감나무 밑 탁자에 앉으니/ 그와 보낸 시간들이 꿈결 같았다. 탁자 위에 있는 작은 상자를 보고/ 지나던 옆집 아이가 물었다. “그 안에 뭐가 있어요?” “그가 있단다.” “죽었군요?” “그냥 작아졌단다. 그래서 이젠 이 조그만 상자 안에 있을 수 있지.” “슬프시겠네요, 그 속에서 꼼짝도 못 하시니.” “아니란다. “화사한 봄날 꽃잎 따라/ 바다에 갈 수도, 무더운 여름날/ 나무 밑 그늘에 누워 쉴 수도, 눈물 나도록 시린 가을날/ 하늘을 날 수도, 바람 불고 눈 오는 겨울밤/ 추운 방의 온기가 될 수도 있단다, 이 상자에서 나와” “그러니까 그분은 이제 없어진 거잖아요?” “그렇게.. 2021. 9. 14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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